자연스러움

부활하신 그리스도. 가장 위대한 이 기적은 오직 소수만이… 꼭 필요한 사람만이 봤다. 하느님의 일의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면, 모든 행위가 자연스럽고 간단할 것이다. 유일무이하고 비길 데 없는 주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급해, 과시에 연연할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대는 왜 사도직의 환경과 수단이 추악하고 더럽고 복잡해야 하느냐고 분개하며 물었다. “어차피 같은 비용이 들 텐데!”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나는 그대의 분노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난한 자와 부자, 현명한 자와 무지한 자, 행복한 자와 슬픈 자, 젊은이와 노인 등 모두에게 말하고 모두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친절하고 자연—초자연—스럽다!

효과를 위해서는 자연스러움. 위대한 화가의 손에 들린 붓이더라도 비단 덮개로 싸여 있으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사람들이다.

성인들이 비정상이라고? 이런 편견을 뿌리 뽑을 때가 왔다.

우리는 그리스도적 수덕 생활의 초자연적 자연스러움으로, 신비적인 현상조차도 비정상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 다른 정신적 또는 생리적 과정들이 그 나름의 자연스러움이 있듯이, 이는 이러한 현상들의 자연스러움이다.

나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과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그대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의 없습니다!”라며, 그대는 이 사실에 놀란 듯이 선언했다.

이것을 머릿속에 잘 새겨두어라. 이의가 없어야만 한다!

그대가 윗사람의 취향이나 사소한 점에 대한 의견을 상습적으로 대변함으로써 그에게 가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터무니없는 아부를 피하라.

그러나 한층 더 조심해야 할 것은 그의 결점을 웃기는 특징으로 나타내서 그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지나친 친숙함이나, 잘못을 농담으로 취급하는 변질까지 가는 것이다. 이는 형편없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는 주변에 불신과 의심의 인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네 수 앞을 생각하면서 말해, 체스를 두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경계심 많고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슬픈 모습을 그릴 때, 이들이 “ut caperent eum in sermone”1, 즉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려고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은 멀리하라.

자연스러움은 몰상식이나, 더러움이나, 인색함이나, 무례함과는 아무 상관없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빈곤과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빈대의 세상에서의 활동으로 좁히려 한다. 그런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필요하고 존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우리가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대다수의 사람을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궁핍한 사람들을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나서는, 그들을 못 본 척할 것인가?

그대가 합당하지 않다고? 그럼… 합당해지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됐다.

그대는 특별해지기를 열망한다! 그런 그대의 열망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2 엘리사벳이 우리 어머니께 드린 말씀이다. 하느님과의 일치, 초자연적인 삶은 언제나 인간 미덕의 매력적인 실천과 함께한다. 마리아는 사촌의 집에 그리스도를 품고 갔기 때문에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목차
1

마태 22,15.

성경 인용
목차
2

루카 1,45.

성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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