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대 영혼과 마음, 즉 그대 지성과 의지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스런 뜻에 대한 신뢰와 의탁의 정신을 심어라. 거기에서 그대가 갈망하는 내적 평화가 생길 것이다.

은총의 ‘당김’을 거슬러, 통제하려 하지도 않는 정욕에 끌려다니는 그대가 어떻게 평화를 가질 수 있겠느냐?

천국은 위로 밀고 그대는 밑으로 당기니 —오직 그대다, 변명하지 말라!— 그대가 찢어지는 것이다.

평화도 전쟁도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충성심과 전투에서 승리하려는 결단력이 부족하면, 우리는 승리와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대의 걱정거리들에 대한 처방: 인내하는 것, 올바른 지향을 갖는 것, 초자연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두려움과 영적 동요를 즉시 멀리 쫓아버려라. 하느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지 않는가? 그런 반응들은 뿌리부터 피해야 한다. 유혹을 불어나게 하고 위험을 키우기만 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라앉고 끝이 나더라도, 엄청난 역경으로 사건들이 계획과 반대로 펼쳐지더라도, 불안에 빠져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또한, 예언자의 확신에 찬 기도를 기억하라. “주님은 우리의 통치자 주님은 우리의 지도자 주님은 우리의 임금님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1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 섭리의 계획에 그대 행동이 부합하도록 이 기도를 날마다 경건하게 바쳐라.

그대 시선을 하느님께 고정함으로써 걱정 앞에서도 평온을 유지하고, 사소한 일과 원한과 시기를 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효과적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많은 에너지의 손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자신이 우리의 ‘친구’ 없이 혼자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짙은 침묵 안에서 날이 지고 있었다…. 그대는 하느님의 현존을 아주 강력하게 느꼈고 그 현실과 함께 엄청난 평화가 찾아왔다.

저 여행 분위기 속에서, 한 형제의 활기찬 인사가 세상의 정직한 길들이 그리스도께 열려 있음을 그대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남은 것은 우리가 정복의 정신으로 그 길을 다니기 위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맞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들이 세상에 살며 세상을 거룩하게 하도록 말이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그대는 지극히 행복하다. 때때로 하느님 자녀 중 한 사람이 그분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그대는 마음속 평화와 기쁨 중에 동요와 불안과는 거리가 먼 애정의 아픔, 씁쓸함을 느낀다.

좋다, 그러나… 그가 반응하도록 모든 인간적 그리고 초자연적 수단을 사용하고… 확신에 차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자! 이렇게 하면, 물은 항상 수로로 되돌아간다.

진정으로 주님께 의탁할 때, 그대는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일에 온 노력과 적절한 수단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평온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 일은 하느님의 마음대로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여전히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터질듯한 행복에 젖어 길을 걸어간다.

그대가 사랑의 아픔으로 아파하기 때문에 그대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평화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영혼이 눈멀고 불안해 할 때, 우리는 바르티매오처럼 빛이신 분께 가야 한다. 계속해서 외쳐라, 더 세게 부르짖어라. “Domine, ut videam!” 주님, 제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2 그러면 그대 눈에 날이 밝아올 것이고, 그분이 주시는 빛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성격의 거친 부분, 그대의 이기심, 그대의 편안함을 쫓는 마음, 그리고 그대의 비호감에 맞서 싸워라. 우리는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외에도 그대가 받게 될 상은 —잘 생각해보라— 그대가 심은 것과 직접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선의 풍성함으로 악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부정적 운동이나 무엇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젊음과 기쁨과 평화를 안고, 낙관에 차서 긍정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그분을 버리거나 그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 모두를 이해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는 기권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활동을 의미한다.

그대는 그리스도적 자애와 인간적 품격을 이유로, 누구와도 메울 수 없는 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웃에게 빠져나갈 통로를 항상 열어두어 그가 진리에서 더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폭력은 설득하는 데 좋은 수단이 아니고, 사도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폭력적인 사람은 첫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항상 패배한다…. 자신의 이해심 부족에서 비롯된 외로움에 둘러싸이고 말기 때문이다.

폭군의 전술은 단결하면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들을 서로 다투게 하는 것이다. 이는 적들, 즉 마귀와 그의 동료들이 많은 사도적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해온 오래된 계략이다.

형제들만 있는 곳에서 경쟁자를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고백을 자신의 행위로 부인한다.

공격적이고 굴욕적인 논쟁으로는 문제 해결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논쟁자들 사이에 광신자가 있다면,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그대의 분노와 실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대가 한 그대로, 즉 말과 행동으로 모욕하는 쾌감으로 그들이 되갚은 것이다.

이 교훈을 배우고 앞으로는 함께 사는 사람들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가혹하고 부당하게 공격받던 그 시간에, 나는 그대가 평화를 잃지 않도록 이렇게 상기시켰다. “만일 그들이 우리 머리를 깨뜨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할 것이다. 쪼개진 머리로 다녀야 하는 것일 거다.”

역설: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3라는 시편의 충고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이래, 날마다 내 머리속에서 걱정거리가 없어진다. 동시에 마땅한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이 더 확실하게 해결된다!

성모 마리아는 교회의 호칭대로 평화의 여왕이다. 따라서 그대 마음, 그대 가족 또는 직업 환경, 사회공존 또는 민족들의 공존이 혼란해질 때, “Regina pacis, ora pro nobis!” “평화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며 이 호칭으로 그분을 끊임없이 불러라.

적어도 평정을 잃었을 때 이렇게 해 본 적이 있느냐? 그대는 그 즉각적 효과에 놀랄 것이다.

목차
1

이사 33,22.

성경 인용
목차
2

루카 18,41.

성경 인용
목차
3

시편 55,23.

성경 인용
다른 언어로 된 이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