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그대는 예수님의 삶에서 특별히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열린 상처가 있는 사람과 만날 때, 고통으로 마음과 몸이 찢어진 사람들에게 평화와 건강을 가져다줄 때… 나병을 치료하고 눈먼 이를 다시 보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잊힌 불쌍한 불구자를 연못 근처에서 고쳐주는 것을 볼 때, 그대는 감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대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친근한 그분을 바라본다!
예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그대는 주님을 위해 고난을 좀 겪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청했다. 그러나 고통이 인간적이고 평범한 방식으로 —가정의 어려움과 문제 혹은 일상생활의 수많은 사소한 일로— 다가오자, 그대는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어려워한다.
그 못을 향해 기꺼이 손을 펴라. 그러면 고통이 기쁨이 될 것이다.
고통을 겪을 때 불평하지 말아라. 아끼는 돌, 귀한 돌을 다듬는다. 그대, 아픈가? 하느님께서 그대를 다이아몬드처럼 손에 쥐셨기에 깎여지는 것을 감사하게 허락하라. 가치 없는 조약돌은 이렇게 가공되지 않는다.
고통을 비겁하게 피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고통을 포용하는 다른 이들을 볼 때 묵상 거리가 있다.
그리스도인답게 고통을 겪을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의 본보기를 따르자.
한탄하고 있느냐? 그러면 그대가 옳다는 듯이 내게 설명한다. “가시에 찔렸습니다! 또 찔렸습니다!”
장미꽃들 사이에 가시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대에게 내 속이야기를 계속하겠다. 나는 내 앞에 십자고상만 있어도 감히 내 고통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밝힐 수가 있다. 늘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그대는 이해받지 못하는가?
그분은 진리이자 빛이셨지만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에게 자주 조언했듯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1
하느님의 자녀에게 반대와 비방은 군인이 전투에서 받은 상처와 같다.
그대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명예,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어쨌든, 그대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안쓰러워하는 대신 그들을, 즉 그대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부끄러워하고 안쓰럽게 여겨라.
때로는 그들이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치 눈이 먼 것 같다. 그러나 더러는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 것은 그대다. 자신을 고치도록 하라!
옳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입증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남들도 이를 인정하고 싶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에 신경 쓰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진실을 주장하라.
그대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조금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그대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수많은 사람의 오해와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를 신체적으로 학대하지는 않았으나, 너무나 자주 무시했고 마치 낯선 사람인 듯 무관심하게 봤다.
그것이 별것 아닌 것 같은가?
박해자들은 본의 아니게 남들이 성인이 되도록 협조한다…. 그러나 이런 성화의 협조자들은 참 불행하다!
이 세상에서는 자주 비방으로 보답을 한다.
고통을 만들어내서 상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데에 열중하는 이들이 있다.
나중에 객관적인 어려움과 시련이 올 때, 그들은 성모님처럼 십자가 밑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지키지 못한다.
희생, 희생!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말씀하셨듯이, 그분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십자가와 포기를 너무 자주 언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랑이 있으면, 힘들더라도 희생을 기꺼이 하고, 십자가는 거룩한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영혼은 기쁨과 평화로 충만하다. 그대의 생명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대를 행복하게 한다면, 왜 위로를 구하듯이 ‘희생’을 강조하는 건가?
가톨릭 교리와 함께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역경을 그분에게서 오는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많은 신경증과 히스테리가 사라질까!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말라. 친척, 친구, 동료, 그 낯선 이는 바로 그대의 형제다.
안타까워하며 종종 읽은 그 복음 이야기, 즉 예수님의 친척조차도 그분을 믿지 않았다는 내용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장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
지상에 오직 하느님과 그대뿐이라고 상상하라.
그러면 모욕과 굴욕을 견디어 내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할 것이다.
영혼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그 병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때때로 몸이 약간 반항하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탄식’마저 미소로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매우 큰 효과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치병으로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이 병은 나를 잘 다스리고 있고, 나는 이 병을 점점 더 사랑합니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다시 이렇게 태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33년의 준비 후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평생을 준비하신 것이다!
진정으로 그분을 본받고자 한다면, 그분 제자들은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자기부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의 공동 구속으로 만들어야 한다.
십자가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하지만 잊지 말라. 십자가의 시작과 함께 열매도 맺기 시작한다.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십자가로 축복하신다.
“Cor Mariae perdolentis, miserere nobis!”2 그대와 모든 시대 사람들의 죄에 대한 보속으로 성모님의 고통에 결합하려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그분의 성심을 불러라.
그리고 그분의 슬픔으로 인해 우리가 죄를 더욱 미워하고, 매일매일 물심양면으로 겪는 어려움을 속죄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모두를 위해 청하여라.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surco/gonan/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