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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시기
사도의 이 예언적인 말씀이 얼마나 여러 번 이루어졌는지 저는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먼 사람만이 오늘날 이 말씀이 거의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계명에 관한 가르침이 배척되고, 참행복의 내용은 정치사회적 방향으로 왜곡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겸손하고 온유하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이는 무지한 사람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정결의 멍에를 견디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신적 계율을 조롱할 수많은 방법이 고안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 가지 징후가 있으니, 바로 교회의 초자연적 목적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정의’라는 말로 어떤 이들은 더 이상 거룩한 삶을 이해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에 물든 특정한 정치 투쟁을 이해합니다. ‘해방’이라는 말로는 죄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싸움을 인정하지 않고, 그 자체로는 고귀하고 정당할 수 있으나 유일하게 필요한 것(루카 10,42), 곧 한 사람 한 사람 영혼의 영원한 구원을 왜곡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간적 과업을 이해합니다.
다른 언어로 된 이 항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amar-a-la-iglesia/27/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