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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십자가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십자가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십자가이자 거룩한 인장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참된 보증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늘 십자가를 지고 행복하게 간다.
그대는 이전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대 안에서 뭔가가 희생으로 찢어지고 있다는 직감을 동반하는, 조금 조바심이 나는 불안한 기쁨이다.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라. 현세에서는 완전한 행복이란 없다. 그러니 지금 즉시, 말없이, 피해의식 없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봉헌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바쳐라.
의욕도 바램도 사라지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슬픔의 소나기가 내렸고, 자신이 묶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싸워 왔는데 나는 여전히 아주, 아주 뒤처져 있구나.”라는 다소 객관적인 사실에서 생겨난 생각들이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것들이며 하느님께서 대비하신 것들이다. “Gaudium cum pace”, 즉 참된 기쁨과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를 낙관론으로 가득 채우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확신과 함께,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가톨릭 교리와 함께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역경을 그분에게서 오는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많은 신경증과 히스테리가 사라질까!
마음의 짐이 사라졌다. 지도자와의 솔직함이 복잡한 것들을 놀랍도록 쉽게 풀어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충성의 결과는 혼동이나 흔들림이 없는 바른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자, 상식과 행복이 존재한다는 확신이다.
그대 삶의 매 순간이 이러한지 보라.
슬픔과 불안은 낭비한 시간에 비례한다.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거룩한 조급함을 느낄 때,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쁨과 평화가 그대를 채울 것이다.
그대는 날마다 더욱 ‘미쳐가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한다는 의식에서 오는 대단한 안정감과 침착함에서 나타난다.
성경은 이미 이렇게 선포했다. “Vir fidelis multum laudabitur”4 성실한 사람은 모두로부터 찬양을 받을 만하다.
이십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이 인간 마음의 갈망을 유일하게 충족시키는 구속 능력을 잃지 않았다고 완벽하게 확신하며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쓰셨듯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을 그대 마음에1 이 사실을 우선 새겨라.
그대의 걱정거리들에 대한 처방: 인내하는 것, 올바른 지향을 갖는 것, 초자연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그 친구는 자신이 우리의 ‘친구’ 없이 혼자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짙은 침묵 안에서 날이 지고 있었다…. 그대는 하느님의 현존을 아주 강력하게 느꼈고 그 현실과 함께 엄청난 평화가 찾아왔다.
성모 마리아는 교회의 호칭대로 평화의 여왕이다. 따라서 그대 마음, 그대 가족 또는 직업 환경, 사회공존 또는 민족들의 공존이 혼란해질 때, “Regina pacis, ora pro nobis!” “평화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며 이 호칭으로 그분을 끊임없이 불러라.
적어도 평정을 잃었을 때 이렇게 해 본 적이 있느냐? 그대는 그 즉각적 효과에 놀랄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499/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