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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바꾸어 현재 교회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진보적’, ‘통합주의적’이라고 불려 온 흐름들은 이 시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 현재 교회의 교리적 상황은 모든 성장의 위기가 그렇듯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풍요로운 교리는 온 교회, 곧 사제다운 하느님 백성 전체를 맡겨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새롭게 충실하는 매우 희망찬 새 단계 앞에 서게 했으므로 분명 긍정적입니다. 동시에 조심스러운 때이기도 합니다. 도달한 신학적 결론들이,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성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극히 살아 있는 신학이며, 사목적·수덕적·규율적 차원에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적용을 지닙니다. 이는 전례와 교계의 조직 구조, 사도직 형태, 교도권, 세상과의 대화, 교회 일치 운동 등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적·외적 삶에 매우 깊이 닿아 있고, 따라서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삶과 양심 자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두 현실은 각각 우리 영혼에 그리스도교적 낙관과 신중함을 요구합니다. 낙관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풍요롭게 하신 그 교리가 충만한 열매를 맺게 하시리라는 기쁜 확신입니다. 동시에 연구하거나 통치하는 이들에게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금은 문제를 연구할 때 평정과 숙고가 부족하면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님께서 통합주의적, 진보적이라고 부르신 흐름들에 관해서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분류하거나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나아가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언제나 거부해 왔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참으로 격렬한 극단에 이르거나, 신학자들과 신자들 전체가 언제나 두 극단 중 하나를 향해야 하는 운명인 듯 영속화하려는 이 구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교리적·실생활적 진보가 끊임없는 변증법적 긴장의 결과라는 확신에 따른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저는 온 마음으로, 원하시는 곳과 원하시는 사람에게 부시는 성령의 활동을 믿기를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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