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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과 함께 살기. 친구의 실수와 친해지는 것 아닌, 그들의 진정한 친구 되기. 보편적 사도직.
오푸스데이에서 하느님 자녀의 삶은 사도직입니다. 이로부터 모든 사람과 함께 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장벽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열망이 그들 안에서 태어납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모든 형태의 편협함, 강압, 폭력을 없애려는 관심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자유 속에서 섬김을 받기를 원하시므로,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사도직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인 여러분 각자는 제한 없는 자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영혼에 대한 열심은 크되 무뚝뚝한 태도나 무례한 몸짓 없이 친절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류를 진리와 같은 차원에 놓을 수는 없지만 항상 애덕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실수하는 사람들을 큰 이해심으로 환영해야 합니다.
저는 이 생각이 여러분에게 분명해지도록 항상 교회의 교리가 신앙에 위배되는 오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충실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까? 우리가 행동과 교리에 확고하다면 많은 분야에서 그들과 같은 수레를 끌 수 없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이 아름다운 사랑과 사과, 평화의 전쟁에서 이해와 애덕, 용서의 씨앗을 지구의 모든 길에 뿌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정신이 단지 좋은 것이거나 권장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그 이상이며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내가 그토록 많이 말하는 새 계명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할 만한 일이 우리에게 행해졌다면 용서할 의무를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선은 인간의 연약함의 모든 결함을 덮어주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되, 신앙의 문제에서 타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에페 4,15).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artas-1/77/ (202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