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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가시덤불에 붙잡힌 채 머무르는 이는 자기 뜻으로 그렇게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등졌기 때문에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약함은 결코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부르심에 의지하고, 옛 전사들이 갑옷을 입듯 하느님의 선하심 안으로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Ecce ego: quia vocasti me!”97 “저를 부르셨기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방어입니다. 나약함이 있다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므로 나약함을 공격해야 합니다.
어려움과 유혹이 닥칠 때에 악마는 자주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게 하려 합니다. “너에게 이런 결함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너를 부르지 않으셨다는 표시다. 너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그 궤변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므로,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총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봉헌은,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어느 날 시작한 길에 충실하는 데에 필요한 은총을 받을 자격, 말하자면 권리를 줍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겪더라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은총이 부족하지 않으리라고 믿음은 말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협력해야 합니다. 그 협력에는 용덕의 실천이 포함됩니다. 용덕의 한 부분은 시련과 어려움과 유혹과 자기 나약함을 견디는 인내입니다. “시험을 받고도 흠 없이 드러난 이는 영원한 영광을 얻으리라. 법을 어길 수 있으면서도 어기지 않고, 악을 저지를 수 있으면서도 저지르지 않은 이는 주님 안에서 제 행복을 보장받으리라.”98
창조주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이 온전한 봉헌의 삶을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Elegit nos in ipso ante mundi constitutionem.’99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거룩한 부르심을 의심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있고, 주님께서 거저 주신 내적 힘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전능 옆에 우리의 나약함이, 당신의 빛 옆에 가련한 우리 본성의 어둠이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구원 사업에 협력하도록 찾으십니다. 그 이끄심은 분명하며 우리는 의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때에 살펴본 수많은 이유 외에도 외적인 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동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한 헌신으로 오푸스데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오푸스데이에서 그토록 많은 희생을 하며 일하는 우리는 정신 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정신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이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확신하게 해 주는 구체적이고 외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Veni, sequere me.”100 “와서 나를 따라라.”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artas-1/70/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