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제8호

오푸스데이 회원들의 삶을 특징짓는 교회에 대한 봉사 정신에 관한 편지입니다. 첫 구절인 Legitima hominum으로도 불리며, 1943년 5월 31일자로 되어 있습니다. 1967년 2월 6일에 발송되었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정직하다면, 그들의 정당한 자유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피조물을 섬기려는 열망으로 이끕니다. Servite Domino in veritate1, 진실하게 주님을 섬겨라, 하고 토빗은 자녀들에게 권고했습니다. 나도 여러분에게 같은 권고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교회와 모든 영혼에게 특별한 봉사를 하도록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와 그 모든 자녀의 유일한 포부, 유일한 소망은 주님께서 주신 고유한 성소 안에서, 교회가 섬김받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Nos sumus servi Dei caeli et terrae2, 우리는 하늘과 땅의 하느님의 종들입니다.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우리의 온 삶은 바로 그것입니다. 오직 초자연적 목적을 지닌 봉사입니다. 오푸스데이는 현세적 도구가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인 봉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시민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자유롭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세상 안에서 올곧게 그리스도인의 완덕에 이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을 아끼지 않는 봉사이며, 사람을 비천하게 만들지 않고 교육하며 마음을 넓혀 줍니다. 이 말의 가장 높은 뜻에서 로마적인 마음이 되게 합니다. 또한 각 나라 사람들의 명예와 선익을 추구하게 합니다. 날마다 가난한 이와 무지한 이, 신앙 없는 영혼과 절망하는 이, 전쟁과 불안은 줄어들고, 사랑과 평화는 늘어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봉사하기를 원하며, 이를 영광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인데, 이 열망을 버리면 그분을 본받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내 자녀 여러분, 주님께서는 바로 이를 위하여 땅에 오셨습니다. filius hominis non venit ministrari, sed ministrare3.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행동 방식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성 바오로와 함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품으셨던 것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본성을 지니셨으며 하느님과 같으심은 부당하게 차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인간의 처지가 되셨습니다4.

이 길을 따르는 분이 교황, 곧 지상의 다정하신 그리스도, 내가 즐겨 부르듯 하느님의 대리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servus servorum Dei,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교황이 종이라면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한 분뿐이며, 교회의 주인도 한 분뿐입니다. 우리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피를 값으로 치러 교회를 사셨습니다. quam acquisivit sanguine suo5. 그러므로 아메리카의 어떤 지역에서 예수님을 부르는 방식은 매우 아름답고 정당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주인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 외에는 이 땅에서 아무도 영혼들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들을 섬기러 왔으며, 주님께서는 신앙이라는 놀라운 선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고 당신 오푸스데이에 있기를 바라셨을 때 바로 그 일로 부르셨습니다. sic nos existimet homo ut ministros Christi et dispensatores mysteriorum Dei6.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삶을 봉사로 만드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좋은 바람을 현실로 옮겨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으며7, 다른 이들을 꾸준히 돕는 실천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Instantia mea quotidiana sollicitudo omnium ecclesiarum8. 성 바오로는 모든 교회에 대한 걱정이 날마다 나를 짓누른다고 썼습니다. 사도의 이 탄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우리 모든 신자가 느껴야 할 책임을 일깨웁니다. 재산과 명예와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극히 충실하게 교회를 사랑하며,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거룩한 교회의 발 앞에 놓아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이 묵상을 시작하며 교황과 주교들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떠올립니다. 여러분이 기도와 헌신한 삶으로 그분들께 드려야 할 공경과 애정과 도움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비체의 지체들은 참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모두 자신의 사명을 하느님과 신비체 전체와 영혼들을 섬기는 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초자연적인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 눈에 보이게 주시는 은사는 각 사람에게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특별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의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언어로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그 말을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9.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교회에 유용합니다. 필요하다고까지 말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수행해야 할 하나의 사명, 곧 봉사하고 사도로서 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공통된 목적 앞에서는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과업이나 은사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각자에게 해당하는 자리가 높거나 낮은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 얼마나 충실한지, 그 일을 수행하는 지향이 얼마나 올바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성도들의 완덕과 봉사 직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일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같은 믿음과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같은 지식에서 하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에 따른 완전한 성숙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입니다10.

어떠한 경우에도 봉사의 사명이 특히 교회 안에서 권한을 지닌 이들에게 놓여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의 범위와 희생의 의무는 더 커집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무게를 지고 교회가 계속 성장하도록 힘쓰는 짐은 무겁습니다. 이 점을 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오푸스데이의 정신이 그 사명을 어깨에 진 이들에게 느끼게 하는 사랑이 날마다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그분들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일치에서 도움을 얻고, 세상 한가운데에서 여러분과 동등한 다른 시민들 사이에서 수행하는 사도 활동에서 힘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 명령에 지극히 충실하기를 요구하시며, 이 의무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라십니다. unusquisque proprium donum habet ex Deo, alius quidem sic, alius vero sic11.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받은 고유한 은사가 있어, 한 사람은 이러하고 다른 사람은 저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사해야 하기에, 봉사하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되풀이합니다. 신비체에 도움이 되려면, 훌륭하게 형성되어 좋은 행위의 열매를 맺고 다른 사람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올바른 양심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우정을 확실히 드러내며 모든 영혼의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인 풍요로운 내적 생활이 필요합니다. 교리를 익히고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영혼들이 무지의 오류나 감상적인 신심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감상적 신심은 헛되고 감정적이거나 미신적인 신심으로 참된 신심의 얼굴을 일그러뜨립니다.

사도직: 다른 이들이 너그럽게 봉사하도록 준비시키기

이 교리를 전할 때에는 교회의 자녀들이 받은 성소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의 가장 큰 노력은 봉사하는 데 있어야 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그 밖의 여러 일과 함께 거저 주지 않는 사도직을 통하여, 너그러움과 이탈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는 지상의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아버지를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힘쓰십시오.

초자연적 정신과 사도적 열망을 살아 있게 지켜야 합니다. 영적 생활을 자유의 감소로만, 교리적 양성을 이해할 수 없는 공식들의 무더기로, 사도직을 한가한 시간에 추가로 하는 일종의 직업으로 잘못 바라보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범으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귀하고 정당한 수많은 분야의 일을 비겁하게 포기하여 하느님과 그분 교회의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자신을 잊어야 하는 결단력으로 행동하십시오. 하느님의 섭리를 무모하게 남용하며 편안한 수동성에 빠지는 이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인간적 수단을 쓰지 않으면서, 주님께서 주실 의무가 없는 비범한 도움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직업이나 일, 또는 시민의 신분에 따라 차지하는 사회의 모든 자리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려는 열망을 야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봉사에 모욕을 당한 듯 반응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길에서 짖는 개들에게 돌을 던지느라 시간을 낭비하며 수고하지 마십시오. 이는 순진한 비유이지만, 보아하니 자신이 짖는 사람이라고 여긴 일부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드러내지 말고, 인간적·초자연적으로 굳건하게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목표와 고귀한 수단과 구체적인 목적을 계속 세우십시오. 이 땅의 모든 활동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놓기 위해서입니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많은 이가 하듯 곁눈질로 이웃을 살피지 말고 일하십시오. 그렇게 살피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나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생각하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했음을 알게 되면 기뻐하십시오.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일의 고됨이 여러분이 봉사하고 있음을 문득 일깨워 줄 때에도 기뻐하십시오.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은 매우 즐거우며, 어려움이 없지 않더라도 영혼을 평화로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을 내 삶의 자랑으로 여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여기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언어와 인종과 국가와 신앙을 구별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거짓으로 사회생활에서 내세우는 그 어떤 차별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봉사의 사명은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이 좋은 정신, 이 큰 품위가 오푸스데이 안의 내 딸들과 아들들의 모든 일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이 사제이며 여러분의 아버지인 내 보잘것없는 삶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종이 되고 자신이 종임을 아는 것입니다. 특히 많은 이가 이웃을 섬기는 겸손에서 달아나는 시기에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런 시기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에는 그런 술수와 소동, 앞서 말한 그런 거짓 속에서 봉사라는 말을 들으면 겁을 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만으로 가득하여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 섬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을 섬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사는 이들, 가까이 있는 이들과 멀리 있는 이들, 다른 나라에 사는 이들, 곧 모든 이에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다른 이들을 섬기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정신 안에 넣어 주신 기쁨으로 기꺼이 해야 합니다. servite Domino in laetitia12, 기뻐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려던 사람은 언제나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면 그러한 장애물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고 여기거나 선언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장애물을 놓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좋은 이들의 반대라는 것이 그리 좋은 이들에게서 나오지 않음을 흔히 알게 됩니다. 그들은 대개 어쩌면 더 은밀하게 교회의 다른 지체들이나 교회를 이끄는 이들을 공격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흔히 따르는 전술은 두 가지입니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들이 베푸는 봉사를 숨기거나 무시하려 합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고결하지 못한 행동을 거짓 사도직의 가면으로 덮습니다. 교회를 미워하여 기꺼이 그들에게 맞장구치는 이들을 같은 깃발 아래 모은다는 구실로, 시대에 따라 하느님께서 친히 교회 안에 일으키시는 것들을 파괴하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광과 봉사를 위하여 그것들을 일으키십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스페인 전역에서 성직자들에게 설교할 때면, 나는 흔히 사제들에게 사제에는 세 부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지만 종교의 관료가 되어 별로 선익도 베풀지 않는 이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소란과 소음을 일으키는 이들, 그리고 거룩한 열정으로 가득 차 영혼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참으로 열성적인 이들입니다.

앞의 두 무리에 속한 이들은 대개 아무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직 셋째 집단의 이들만, 바로 교회를 섬기려는 열망 때문에 비판과 험담에 노출됩니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활동 앞에는 악마적인 동맹까지 나타납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대개는 없지만, 정의의 뜻을 넘어 설명할 수 없는 복수심처럼 보이는 데에 빠지는 동맹입니다. 성직자들과 가톨릭 신앙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세속의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팔짱을 끼고 나타납니다.

좋은 이들의 몰이해에서 오는 고통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충실하려는 이들을 이렇게 대하는 행태를 명확한 분별력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확인하면 두 가지 이유로 슬픕니다. 그런 허튼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써 자행되는 불의와 불공정을 지나치기 때문이며, 그 술수의 표적이 되는 가련한 영혼들은 대개 자신을 지키거나 진실을 증명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비방은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호소할 법적 길도 없습니다.

이 가련한 이들은 흔히 ex informata conscientia라는 이유로 온갖 쓰레기를 뒤집어씁니다. 거룩한 것을 받아들이는 양심이 안타깝게도 때로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끔찍하게 나쁜 것들로도 가득 차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러는데” 하는 말만 모아서 피고발인의 말을 듣지 않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본적인 신중함의 규칙을 잊으면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누구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고발자들은 하느님의 친구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vos amici mei estis, si feceritis quae ego praecipio vobis13. 내가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곧 올바르게 행동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중세적인 절차가 사용됩니다. 누구도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비밀이 있으며, 피고발인은 어둠 속에서 허공을 치도록 내몰리고, 누가 고발했는지 무엇으로 고발당했는지 몰라 고뇌합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흔히 그에게 떠넘겨집니다. 알기만 하면 쉽게 반박할 수 있을 일들입니다. 그에게 남는 유일한 위로는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예수님께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nemo tamen palam loquebatur de illo propter metum Iudaeorum14. 유다인들이 두려워 아무도 그분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식은 단지 낡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것입니다. 보고서를 하나 쓰거나 여러 개 쓰거나, 재판까지 한다 해도, 당사자나 변호인들이 고발의 이유를 알 수 없다면 그러합니다. 고발자는 정의와는 아주 동떨어진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일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슬픈 경우에는 피고발인처럼 보이는 이들보다 고발자들과 판단하는 이들이 내게 더 안타깝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앞의 이들은 자기 영혼을 위험에 내걸기 때문입니다. 뒤의 이들에게는 성 베드로의 첫째 서간 말씀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si quid patimini propter iustitiam, beati15.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여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생각하건대, 누군가 고발당하면 맨 먼저 그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가 하는 일의 이론과 실제를 알고 있어, 제기되는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잘못과 잘못한 사람을 혼동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어떤 이의 진짜 관심사는 오류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잘못했다는 사람을 단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실제로는 그 오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까지도, et qui missi fuerant erant ex pharisaeis16, 더 고결하게 행동했습니다. 세례자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tu, quis es?17, 당신은 누구요? 요한은 한 번, videns autem multos pharisaeorum18, 바리사이들의 무리를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19 호되게 꾸짖은 적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봉사의 특성

그러나 이 곁가지는 여기서 마칩시다. 이 편지를 너무 길게 쓰고 싶지 않고, 주님과 영혼들에 대한 우리 봉사의 몇 가지 특성에 관하여 아직 많은 것을 말씀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여러 번 들었겠지만 먼저 주목하게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과업은 평범한 시민들의 세속적이고 평신도적인 활동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시민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시민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종사하는 직업 활동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성덕을 추구하고 사도직을 합니다.

평신도들은 날마다 참여하는 활동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만들 수 없다고 감히 선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거룩해지고 사도로서 일하는 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거룩한 방식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직 생활이나 수도 생활의 문제만 연구하는 데 익숙하고, 평신도의 현실, 곧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탐구하거나 묵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오푸스데이의 새로움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이탈하여 살면서도 동시에 세상 안에서 세상을 사랑하고, 현세의 일들에 접붙여져 생계를 잇는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오푸스데이 회원이 아니었더라도 생계를 이었을 바로 그 일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피로와 지침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여러분의 꾸준한 직업 활동을 지배권이나 직책에 대한 야심으로 해석하기조차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그 일 안에서 성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또 영혼들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가까이 이끌기 위하여, 인간적 측면에서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 어렵고 겸손한 우정과 봉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일부 수도자나 사제들처럼 취미로 하는 사람들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수적으로 세속 직업을 수행하거나 세속 학문을 연구하며, 어떤 경우에는 자기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를, 나아가 자기에게 고유하지 않은 그 학문 활동이나 직업 활동 자체까지 어느 정도 훼손합니다.20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활동은 세속적이며, 좋은 의미의 반성직주의로 가득합니다. 이는 사제직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며, 바로 이 충실함 때문에 몰이해가 적지 않더라도 우리를 교황과 교구 직권자들에게 충실히 밀착하게 합니다.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교황에 대한 사랑과 기꺼이 따르는 순명을 지치지 말고 전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직무를 세우지 않으셨더라도, 교회 안에서 합의하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이성으로 이끌려면 성좌라는 강한 중앙 권위가 필요하다고 내 이성은 말합니다.

그러나 더욱이 이 논리적 이유들보다 위에, 또 그에 앞서,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대리자가 있기를 바라시며, 당신 성령으로 그를 오류 없이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성직주의자여야 합니다.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하는 반성직주의이며, 좋은 것입니다. 나쁜 반성직주의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suadente diabolo, 악마의 부추김으로 폭력적으로 나타나, 하느님을 미워하여 종교와 사제직에 관련된 모든 것을 지극히 잔혹한 고문과 함께 짓밟는 것입니다. 역시 나쁜 또 다른 반성직주의는, 어쩌면 폭력에까지 이르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일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합니다. 셋째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교회를 이용하여 순전히 현세적인 이익을 얻는 것을 보는 데서 생겨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반성직주의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확신합니다. 교회와 그 일꾼들이 현세적 속박에서 거룩하게 자유롭기를 바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개인적 이익에 이용하거나, 주님께서 봉사하라고 주시는 하느님의 성소를 오직 편안함과 자기 이득만을 추구하는 돈벌이 기계로 바꾸는 온갖 남용과 옹졸함을 본성적으로 혐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직주의에는 대개 법에 대한 경멸이 따릅니다. 법은 이웃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듯합니다. 법이 수행할 마음이 없는 봉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권한을 남용하여 다른 이들이 자신을 섬기게 하는 사람, 영혼들을 자기 염소 떼처럼 폭군적으로 다루고, 뿔을 붙잡아 “이들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듯 양심의 거룩한 자유를 짓밟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없습니다. 그는 이 말의 나쁜 뜻에서 성직주의적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도 활동에 의미를 주는 겸손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삶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넓히는 데 협력하기보다 교회의 일치와 사목 활동에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이에게 있어야 할 봉사 정신을 잊게 할 것입니다. 직책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쓸 수 있는 성직록처럼 여기거나, 모든 의무에서 면제해 주는 특권으로 여기거나, 소유자의 변덕대로 다룰 수 있는 개인 재산으로 여기게 할 것입니다.

특정 사도 운동이나 구체적인 영혼의 활동을 위하여 권한을 남용하려는 경우에도 그 행동은 정당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자녀에게 속하는 것에는 변덕이나 편애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intuitu ministri Dei, 곧 하느님의 일꾼이라는 이유로 받은 것이며, 이는 intuitu gregis seu populi Dei, 곧 모든 신자의 유익을 위하여 받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좋은 관리인이 되어야 합니다

신비체 안에서 어떤 사명을 맡았든, 자기 행동에 관하여 결산해야 함을 아는 충실한 관리인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어느 날 물으셨습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나누어 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누구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집에서 내쫓고 불충실한 종들이 받을 몫을 줄 것이다21.

좋은 관리인은 주인의 선물을 정의롭게 나눌 줄 알고, 받은 탈렌트로 모든 종의 유익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 줄 압니다. non est personarum acceptor Deus22,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겉모습에 이끌리지 않기가 어렵고, 그 충실한 관리인은 주님 친히 하시듯 주님의 재화를 나누려면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편안함을 따라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 좋은 종들에게 바로 좋은 종이라는 이유로 가장 불쾌한 일들을 떠맡기거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준비를 헤아리지 않고 직책과 직무를 나누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폭력을 싫어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순수하게 봉사하려는 바람의 인간적 보답으로 끊임없는 거친 대우밖에 받지 못했다면 거칠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적으로는 이해합니다. 그가 그런 지상의 보답을 구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인 피조물이며,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는 언젠가 끊어지기 쉽습니다.

내가 말하는 반성직주의에 어긋나는 것은, 가톨릭 신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의견이 자유로운 일에 개인적 기준을 강요하려는 태도입니다. 또는 다른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정한 전문적 일을 무보수로 해 달라고 요구하며, 정당하고 합리적인 경제적 보상을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며 살아가고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심한 것은, 그 일을 어쩌면 교회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다른 사람들에게 청했다면 마땅한 값을, 나아가 교회를 배신하는 대가까지 치렀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나라의 정치 생활에서든, 주교단을 대표할 권한을 스스로 차지하고 주교단을 현세의 일에 연루시키는 평신도들을 보면 나는 대개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요란하게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 부르는 그 평신도들은 시민으로서 자기에게 해당하는 개인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담쟁이가 담벼락에 달라붙듯 교회에 달라붙어, 먼저 잎으로 벽을 가리고 그다음에는 훌륭한 돌들의 틈에서 수액을 찾는 뿌리로 벽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성 루카의 그 대목을 떠올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듯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23.

성직주의적인 행동 방식은 매우 좋은 지향으로 뒷받침되더라도, 사도적 구상과 계획을 실행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실행을 요구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이는 사심 없이 해야 함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에게도 먹고 입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들더라도 영혼들에게 봉사하기를 결코 거절하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 바오로의 말씀을 압니다. Dominus ordinavit iis qui Evangelium annuntiant, de Evangelio vivere24.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의 이 말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non usi sumus hac potestate, sed omnia sustinemus, ne quod offendiculum demus Evangelio Christi25. 우리는 이 권리를 쓰지 않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것을 기꺼이 견딥니다.

봉사하려는 열망 대신 교회에 대한 거짓 사랑이 나타나면, 자의와 특권도 지배하고, 하느님 현존 안에서 행동할 때 언제나 있는 건전한 분위기가 답답하고 혼탁해집니다. 그 결과 오직 봉사하려는 이들을 좋게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논리이기는 해도, 논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성 요한이 이미 써야 했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나는 그 교회에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트레페스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면 그가 하는 짓을 들추어낼 것이다. 그가 우리를 악의에 찬 말로 헐뜯으며 저지르는 악을 밝힐 것이다. 그는 이것도 모자라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이들까지 가로막고 교회에서 쫓아내고 있다26.

지극히 사랑하는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오푸스데이가 하느님의 것임은 이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를 이단자처럼 취급하기까지 한 거짓 형제들의 몰이해와 질투 때문에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기하여 거짓말하며, 진리를 말하기로 결심할 때에야, 바로 그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을 안타깝게도 잊습니다. veritas liberabit vos27,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어 온 것은 사실이며, 당분간 우리를 조용히 일하게 내버려 둘 기색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엾게 여기듯 “적이 참 많군요!” 하는 이들에게는 꼭 분명히 말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친구도 참 많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며, 날마다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당신 오푸스데이를 사랑하시어 우리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ut fructum plus afferat28,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반대를 허락하십니다. 인간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르겠네. 고을 원님도29 모르겠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에서는, 머리를 쥐어짜며 멀쩡한 데서 억지로 트집을 잡기 시작한 그 사람들이 섭리의 도구입니다. 오푸스데이를 이해하려면 올바른 지향을 지닌 가톨릭 신자로서, 사목과 신학과 교회법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으면 되는데도 말입니다.

오푸스데이의 소박한 정신은 진리와 진실함을 사랑하고, 교회에 대한 봉사를 바라보며, 자유를 존중하고 옹호하도록 이끕니다. 솔직히 말해 적어도 인간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이 사랑을 지니지 않는, 하느님의 일을 위한 다른 봉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의 일치와 놀라운 다양성을 사랑할 것이며, 그 일치의 도구들을 공경하고 다른 이들도 공경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또한 다양한 영성, 단체, 가족과 활동 안에 드러나는 보편성과 내적 풍요의 표현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모두 하나이시며 나뉘지 않으시는 같은 성령에게서 나왔음을 증언합니다30.

그러므로 어떤 영적·사도적 과업의 초자연적 의미를 훼손하거나, 개인의 자유나 우리 어머니 교회 안의 기관들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겉으로만 교회를 섬기는 모든 행태에 힘 있게 대응해야 합니다.

사도직의 일치

Ut omnes unum sint.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과 빛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한 하나를 이루게 하려는 것입니다. consummati in unum.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31.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시는 기도입니다. 또한 오푸스데이 시작부터 그 안의 주님의 모든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날마다 바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pro unitate apostolatus. 온 교회에는 오직 교황이, 각 교구에는 성좌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가 주는 일치를 위한 기도입니다.

사랑 안의 일치, 하느님의 사랑 안의 일치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시고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32.

내 영혼의 딸들과 아들 여러분, 이 일치를 향한 열망은 우리가 교황을 온 힘으로 사랑하고, 어느 분이 교황이시든 언제나 그분을 섬길 준비를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늙고 내가 하느님께 결산한 뒤에도, 아버지는 온 마음으로 교황을 사랑했다고 여러분의 형제들에게 꼭 말해 주십시오.

더욱이 우리는 봉사하며 교회의 일치를 촉진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에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다른 이들의 사도 활동에 간섭하는 일이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객관적으로 다르고 수행하는 방식도 다르며, 언제나 인간의 직업 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수도자들의 활동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수도자가 아니며 그들을 대신하려고 생겨난 것도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신자 단체 회원들이 수행하는 활동과도 다릅니다. 우리의 사도적 과업은 직업 활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이며 직업인으로서 하는 일상 활동에 단지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적이면서 동시에 사도적인 그 일들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부양하고 오푸스데이의 영적 활동을 재정적으로 도울 만큼 충분히 벌어야 합니다. 사도직은 직업에 덧붙이는 것도, 별도의 직업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위한 활동에 대한 우리의 협력은 교회에 매우 경제적인 봉사입니다. 무보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도 여러분은 활동의 전부나 일부를 특정 사도직에 바치고, 그 일에서 생계비의 전부나 일부를 얻어 교구나 성좌에 부담이 되는 다른 평신도들과 다릅니다.

오푸스데이와 그 자녀들은 각자 자신의 직업에서 일하여 충분히 자신을 부양하므로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단체 사도직 기관들을 위하여 더 많은 도움을 받을수록 영혼들에게 더 잘 봉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적·사회적·직업적 관계의 차원에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든, 문화·학문·정치·경제 등의 이유로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 안에서든, 여러분은 일을 통하여 교리와 내적 생활을 전하며 친구와 동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이끕니다.

이렇게 권리와 의무에 따라 인간의 모든 활동 안에 깊이 들어가, 각자 개인적으로 문화와 학문과 예술을 비추어야 할 교회의 관심사와 교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모든 가톨릭 신자와 모든 고결한 단체와 가족과 조직의 삶 자체와 자유도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섭이 생길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어떤 사람이 잘못된 성직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의견에 맡기신 분야에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려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런 남용을 막으려고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이라는 이름을 헛되이 붙인 특정 사회·정치·경제 활동 등의 지배권을 잃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의 편에 섭니다.

가톨릭 신자들의 판단 기준의 일치, 따라서 오푸스데이 회원들의 판단 기준의 일치는, 교회의 통상 교계가 영혼들의 선익을 위하여 적절하다고 여길 때 제시해야 합니다. 오푸스데이를 이끄는 이들은 그때에도, 그 전에도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개인적으로 자유롭고 책임을 지는 그 문제들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그들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영혼들의 선익을 위하여 교계의 분명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순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푸스데이 밖에는 교회가 말하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말한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고, 교회가 침묵하면 불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개인적 책임을 자기 나라의 주교단에 떠넘기고 싶어서 교회의 침묵을 원망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려 하거나, 자기 사도직이나 정치나 사회의 작은 세계라는 보잘것없는 무대에서 사라지기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이들의 공로나 성공을 자기 것으로 돌리려고 고집하거나, 돋보이려는 즐거움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면, 결국 불화를 뿌리는 이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때 교회의 말씀이 걸림돌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진리의 스승인 교회 때문이 아니라, 그 자녀 가운데 일부의 불순명 때문입니다.

자유와 책임

그러므로 자유에 대한 사랑을 지치지 말고 전하고, 인간의 모든 일에서 개인적 책임으로 일하며 이를 드러내십시오. 거듭 강조합니다. 오푸스데이 자체는 그런 활동들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푸스데이의 몫은 오직 여러분의 내적 생활의 활력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도록 도와, 여러분이 모든 곳에서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봉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계속 되풀이하듯, 평신도의 마음가짐으로 하는 너그러운 봉사입니다. 900그램을 1킬로그램으로 팔기 위하여 성인의 이름을 이용하지 않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출세하려고 교회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직업인의 마음가짐입니다.

한마디로 여러분은 자신이 어른임을 알고 영혼들을 섬겨야 합니다. 시민으로서의 자기 활동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나 오푸스데이를 연루시키지 않고, 자기 행동을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이 평신도적 방식은, 오푸스데이가 단체로서 오직 사도적 목적을 위하여 추진하는 활동들에도 적용됩니다. 그것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더 잘 알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한 시민 집단이 할 수 있는 정당한 활동의 모든 범위를 아우릅니다. 따라서 역시 직업적인 일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 단체 사도직 기관들이나 우리 센터들에 “가톨릭”이라는 이름이나 수호성인의 이름을 결코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이렇게 하면 사도적 내용을 전혀 숨기지 않으면서도 우리 활동의 평신도적 성격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적지 않은 경제적 희생이 따르더라도 우리는 이 방식을 지킬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국가에서는 교회가 운영하거나 수도자들이 맡은 교육 기관과 학교 등이 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면세나 특정 재정 지원 같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리는 일이 흔합니다. 가능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특권을 기꺼이 포기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특권들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는 우리의 평신도적 방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에는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그 기관들이 공식적으로 가톨릭 기관이라면, 일부 신자들과 특히 많은 비가톨릭 신자가 협력을 그만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그러합니다. 또한 그 기관을 운영하는 내 자녀들은, 있지도 않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많은 이에게 시달릴 것입니다. 왜곡된 사고방식으로 꿀에 모이는 파리처럼 이익을 얻으려고 가톨릭 사도직을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앞서 하던 말로 돌아갑시다. 나는 봉사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우리의 봉사가 지녀야 할 몇 가지 특성을 짚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오푸스데이에서 우리가 지닌 평신도적 활동 방식과 매우 밀접한 또 다른 특성, 곧 사심 없음에 머물고 싶습니다. 나는 흔히 이 땅에서 감사의 눈길 한 번조차 기대하지 않고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양심에 비추어 감히 확언하건대, 이런 행동 방식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성 베르나르도가 교황 에우제니오 3세에게 보낸 Cinco Libros sobre la Consideración에서 다음 말씀을 쓰게 한 이유들이 오직 지난 역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나 큰 남용입니까! 입법자의 입을 바라보는 이는 적고 모두가 손을 바라봅니다.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 손들이 직책과 일자리를 나누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야심가들은 봉사하겠다고 제안할 바로 그때 무엇보다 지배하려고 합니다. 자기들을 믿는 이들에게 더 적절한 때에 해를 끼치려고 충실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땅과 하늘에 미움을 산 이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불경과 거룩한 것들에 대한 무모함으로 가득 차, 땅과 하늘 양쪽에 손을 댔습니다. 자기들끼리는 반역하고, 이웃은 시기하며, 낯선 이들에게는 비인간적입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는 사람들이며,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듯 꾸밀 때에는 자신들이 모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들은 복종을 견디지 못하고 이끌 줄도 모르며, 윗사람에게 불충실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청할 때에는 부끄러움이 없고 거절할 때에는 얼굴이 두껍습니다. 받으려고 성가시게 굴고, 받을 때까지 불안해하며, 받고 나서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혀로는 큰일을 말하도록 길들였지만 행동하는 것은 모두 아주 작습니다. 약속은 한없이 늘어놓고 이행은 지극히 적습니다. 매우 달콤하게 아첨하고 지독하게 헐뜯으며, 아주 순진한 척 위장하고 매우 악랄하게 배신합니다33.

내 자녀 여러분, 인용이 길었지만 모든 설명을 대신해 줍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과 봉사가 참되면, 언제나 더 높은 곳을 지향하므로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에게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Domino Christo servite34.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올바른 지향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확언합니다.

지도자에게 진실을 말할 줄 알고 침묵할 줄 알기

진리의 길을 걷지 않는 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은 불편합니다. 순교자와 성인이 미지근한 이에게는 불편하고 열성적인 이에게는 자극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자녀들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실제로 벗어나 초자연적 목적을 바라보며, 하느님 현존 안에서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든 것을 언제나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이끄는 사람, 고삐를 쥐고 봉사하는 사람을 참으로 도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착한 목자는 어떤 양에게 옴이 생겼음을 알게 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수고와 복잡한 일이 생겨도, 그것들은 언제나 거룩한 일이 될 것입니다.

때가 알맞지 않거나 조언할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조언을 받아 말할 수 없을 때에는,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봉사란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일하는 것임을 이렇게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으로, 교회와 모든 영혼에게 사심 없이 봉사하며 모범적으로 살려고 힘써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이제 지나가는 말로나마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시민 생활에서 책임 있는 자리를 거부하지 않으려는 여러분의 노력은 오푸스데이의 실재와 완전히 양립합니다. 언제나 온전히 정당한 수단을 쓰는 고결한 그 노력의 유일한 목적은 사심 없는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개인적 야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일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도 가장 드러나지 않고 비천한 일을 할 때와 같은 정신으로 일할 것입니다. 달리 말할 수 없는 봉사하려는 열망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오푸스데이 안에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직책은 언제나 의무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십시오. 주님과 온 인류를 사랑하여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꺼이 수행하는 의무입니다.

교회에 대한 우리 봉사의 또 다른 특성은 과장된 선전과 홍보가 없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겸손하게 일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의 시작부터 나는 우리에게 어떤 비밀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 각자 양심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일에 관하여 신중히 삼가는 태도는, 그때에는 더욱 필요했지만, 언제나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합니다. 비밀이나 은밀한 수군거림 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필요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아라곤 사람이며, 인간적 성격에서조차 진실함을 사랑합니다. 감추고 둘러대는 모든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발코니에서 사는 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할지와 통계를 먹고살며, 가장하는 것을 자기 존재의 황금률로 삼는 듯한 이들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도 우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사생활을 캐고, 양심의 영역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일들까지 알려는 병적인 호기심은 우리의 활동 방식이 지닌 깊은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호기심은 너무나 자주 성소를 죽이고 교회에 해를 끼치는 데에만 쓰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다루는 돈만 빼고 모든 것의 통계를 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들, 곧 중요한 것들의 대부분은 숫자로 줄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듯합니다.

물론 나는 통계를 경멸하지 않으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허용되는 만큼 통계를 널리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분명히 봅니다. 이는 스페인에서 공산주의 지배하의 종교 박해 때 최근에 겪은 경험의 기억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관하여 아는 것에도 근거합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정치적 불안정이 거의 끊이지 않으며, 늘 반가톨릭 박해의 움직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의 적들이 통계를 실은 간행물이나 단지 주교청에서 준비한 이런 종류의 문서에서, 조직된 가톨릭 세력을 파괴하는 데 쓸 정보를, 때로는 지극히 상세한 정보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박해자들이 얼마나 서둘러 교회 문서고로 향하는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1936년 전에도 후에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정치에 개입한 적이 없습니다. 범죄자처럼 쫓기며 숨어야 했다면 오직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주님께서는 나를 순교의 월계관을 받을 만한 이로 여기지 않으셨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세 번이나 순교할 뻔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번은 나로 잘못 안 사람을 우리가 살던 집 앞에서 목매달아 죽였습니다.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참으로 의무입니다. 칠팔 년 전 그때 수많은 사제와 일반 신자를 살해하고 성당과 수도원들을 파괴했듯이, 하느님의 종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도직을 하던 집들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내 자녀들의 이름이 주교청 문서에 없었으므로 오직 나만을 뒤쫓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와 함께하던 거의 모든 이는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눈에 띄지 않은 채 영혼들의 선익을 위하여 계속 일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는 오푸스데이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좋습니다. 지극히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사도로서 활동을 계속하며, 숨어 있는 사제들을 돕고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이 했듯이 세례를 주고, 성체를 분배하고, 가톨릭 신자들을 격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들이 가장 효과적인 일부 기관들에 대하여 따르는 방식을 적용할 만합니다. 비밀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의 경우에는 실제로 비밀조차 없지만, 불필요한 세부 사항의 공개는 피하는 것입니다. 내 자녀들이 오푸스데이 회원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적 활동을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신비주의나 은밀한 수군거림 없이도 이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권한 있는 당국에는 필요하다고 여기는 통계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푸스데이에 관한 한, 우리가 언제나 그러하듯 주교들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불필요한 세부 정보를 담은 국가별·교구별 통계를 공개하거나 그 정보를 주교청 문서고에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존경하는 교구 직권자들은 수도회 장상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고, 성직 수도회라면 교구 안에서 직무 권한을 받은 사제들의 이름과 주소를 압니다. 우리 경우 같은 신자 단체라면 단체의 소재지와 책임자들의 이름을 압니다.

교구 직권자가 자기 교구 안에서 수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거나 알려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를 안다면 그가 수도자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추문이 생기지 않는 한, 그가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직속 장상뿐이며 그마저도 언제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주교가 신심 단체의 각 회원이나 가톨릭 운동의 각 회원에 관하여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각 신자의 재산에 관하여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쓸모없는 정보를 모두 보유하려면 거대한 문서고와 수많은 기록 담당자, 지칠 만큼 많은 서류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이상한 점은 어떤 이들이 우리에 대해서는 머리카락 수까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이런 부당한 차별이 끝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우리와 동등한 다른 시민들처럼 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세금을 내고 군 복무를 하며, 동료들에게 없는 특권은 조금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에 씌우려고 애쓰는 비밀주의라는 비방을 없애도록 힘써야 합니다. 감히 오푸스데이를 프리메이슨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대리자를 섬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적들에게 배울 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 사도직이 보여 주는 비조직적인 조직일 것입니다. 또한 지나친 공개가 많은 내 자녀의 활동을 가로막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압니다. 오푸스데이 회원이나 책임 있는 가톨릭 신자로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그들은 교회를 섬겨야 할 수많은 환경, 곧 대학·노동조합·노동계·경제·정치 등의 환경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식적으로”라고 말하는 까닭은, 실제로 여러분 대다수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오푸스데이 회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분 삶의 bonus odor Christi를 느낍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에 어떤 종류의 비밀도 없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성소가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져 모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길, 곧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길에는 그런 공개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우리 가족인지, 또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묻는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적절하다고 여긴다면 말할 자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널리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에 속하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외를 요구하거나 사업을 하려고 가톨릭 신자나 성직자라는 신분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이들이 우리의 신중함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놀라지 마십시오. 그들의 일반적인 행동 원칙은 우리의 것과 너무 반대되므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습니다. 일과 행동으로 고백하며, 필요하다면 위험이 따를 때에도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했듯이 말입니다. nobilis decurio, qui et ipse erat exspectans regnum Dei, et audacter introivit ad Pilatum et petiit corpus Iesu35. 그는 고귀한 인물로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당당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우리 정신의 이 특성을 짓밟을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일하는 교구의 직권자들이 대체로 우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하는지 여러분은 압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푸스데이가 어떤 법적 형태를 취하든, 우리 어머니이신 교회는 자녀들의 고유한 모습을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로써 오직 교회를 섬기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관하여 의혹도 의심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그런 태도가 있으면 항의하지 않고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신앙도 사랑도 없는 듯한 어떤 이들이 흔히 하듯, 교회 안의 인간 행동으로 생긴 약점을 비판하려고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그 어머니를 냉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교회와 교황께 아무리 많은 봉사를 드리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일에 결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날마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으므로 우리의 수고는 언제나 보잘것없어 보일 것입니다. tempus breve est36.

사심 없는 사랑과 함께 큰 신뢰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면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그 신뢰가 자라리라고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몰이해를 허락하시더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 몰이해는 결코 교회의 몰이해가 아닐 것입니다.

이 자녀다운 신뢰의 정신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에게서 오는 어떤 소식이든 언제나 기쁘고 즐겁게 받을 것입니다. 고통스럽거나, 오푸스데이 밖의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일 때에도 그러합니다.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나쁜 것도 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diligentibus Deum omnia cooperantur in bonum37.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이 됩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지니는 이 기쁨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럴 이유가 있을 수 없기에, 우리에게 다른 반응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경이, 무엇보다 좋은 모범이 되리라고 감히 확언합니다.

주교들에 대한 사랑

이 묵상은 마지막으로, 우리 사도적 봉사 전체에 스며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도록 이끕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기에, 성령께서 하느님의 교회를 돌보도록 세우신 주교들도38 크게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교구에서 존경하는 교구 직권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일하며, 우리 활동의 열매는 그 교구들에 남습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활동 방식으로 그분들이 표현하는 바람을 따르려고 힘씁니다. 다른 일을 위해서는 우리 주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신 안에서 우리의 순명은 기꺼운 순명입니다. 사도적 지침을 주시면 우리는 효과적으로 조용히 일할 것입니다. 교구 직권자가 특별한 지침을 내릴 필요가 없다면, 오푸스데이 고유의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역시 교구를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모든 주교가 여러분이 교구에서 베푸는 선익을 기뻐하고 크게 감사해합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은 그분들만 우리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들을 기뻐해야 한다는 점임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표현이 존중의 부족을 뜻하지 않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신도 활동으로, 교구에 한 푼도 부담을 주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교구의 봉사와 신자들의 영적 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교구 직권자가 주교 축성과 교구에서 맡은 사명에 따라 정의의 의무로 해야 하는 일을,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 어머니 교회와 영혼들을 사랑하여 합니다.

처음부터 가르쳐 왔듯이 교구장을 위하여 꾸준히 기도하는 것을 그만두지 말고,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인간적 품격에 맞는 예의로 대하십시오. 이 점에서도 우리는 수도자들과 다릅니다. 수도자들도 매우 세심하게 대하겠지만, 당연히 주교들과 다른 관계를 지녀야 합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고방식과 양성과 정신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교회적이며, 다른 신자들과 그들을 구별하는 완덕의 신분이라는 개념에 따라 매우 다른 틀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와도 구별됩니다.

존경하는 교구 직권자들이 요청했을 때, 우리는 교구가 추진하는 사도직에 직접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것입니다. 그 바람을 이루는 일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개인적 희생, 나아가 경제적 희생을 요구할 때도 흔히 있었습니다.

오푸스데이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우리의 모든 단체 사도직에서, 우리는 언제나 주교와 뜻을 맞추어 활동합니다. 우리의 열망은 주교의 권위를 굳게 하고 사도직에서 판단 기준이 갈라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치는 획일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자기 삶을 하느님을 섬기는 데 개인적으로 온전히 바치는 이들은 교회의 구속 협력 사명 안에서 일치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고유한 성소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협력합니다.

따라서 일치는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사랑하고 그 부르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온 교회를 위하여 일하며 도움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성소와 하느님의 영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매우 다양한 선물들을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실제로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성소 존중: 수도자들에 대한 사랑과 공경

다른 이들의 성소와 각 성소에 따르는 사도적 과업을 사랑할 수 없거나 적어도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의 성소도 올바르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성소가 자기 성소와 같기를 무질서하게 바라거나, 모든 사도직을 자기 사도직에 흡수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정의에 따라 수행해야 할 목적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들의 활동과 사도직의 일치와 다양성에 장애물이 됩니다.

이 묵상이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편지의 주제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수도자들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고 공경하는지 다시 한번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에 관하여, 성 바오로가 필리피의 신자들에게 쓴 말씀을 천 번이라도 진실하게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testis enim mihi est Deus, quomodo cupiam omnes vos in visceribus Iesu Christi39.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느님께서 증인이십니다.

그러나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오푸스데이라는 사도적 현상과 여러분의 성소는 매우 고유하며, 수도 성소가 생겨나고 자라는 과정과 매우 다릅니다. 그러므로 오푸스데이의 모든 회원은 세상 안에서 이 성덕의 길을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사제직이나 수도 신분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끌어내어 자기 것이 아닌 성소로 이끌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길에서 누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를 분명히 하려고 나는 언제나 우리가 해이해진 수도자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해이함도 없고 수도 성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푸스데이에 오기 전의 존재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합니다. 각자의 신분, 곧 미혼자·기혼자·사별한 이·사제의 신분에 있는 거리의 사람들입니다. 사랑으로 영혼들에게 봉사하려고 개인적으로 삶을 바치더라도, 오푸스데이에 온다고 신분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형제이며 한 분이신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서로에게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활동이 다르더라도 그렇습니다. fuit… Abel pastor… et Cain agricola40. 사도적 과업에는 한계가 없고 일할 일손은 모두 모아도 부족합니다. 모든 이를 위한 일이 있습니다.

시기나 질투나 횡포 때문에 형제들의 활동에 장애물이 되는 사람은 성경의 이 엄한 꾸지람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의로움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41.

아버지이신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각기 특별한 사랑을 보이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르기는 해도 모든 이에게 그런 사랑을 지니십니다. 각자에게 자신과 가족 전체와 활동 전체의 유익에 알맞은 것을 주십니다.

잘못은 자기 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자녀의 무심함과, 다른 이들의 것을 시기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 잘못은 할 수만 있다면 형제를 치워 멀리 보내려는 유혹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42.

어디에서든 교회에 봉사하기

내 영혼의 딸들과 아들 여러분, 이제 마칩니다. 여러분이 받은 정신으로, 큰 기쁨을 지니고,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에 대한 봉사가 부르는 곳이면 어디로든 갈 준비를 하십시오.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인 남녀로서 사는 여러분 삶의 자연스러움은, 이 땅의 모든 활동을 초자연적으로 만들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되게 할 것입니다. 교회가 박해받는 곳이나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도 그러합니다. 또한 신비체 전체의 활동 안에서 일치하여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할 것입니다43. 내가 이 세상의 보상을 기대하며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무나 좋으시어 보상을 주십니다. 바로 여러분의 충실함입니다!

Maiorem horum non habeo gratiam, quam ut audiam filios meos in veritate ambulare44. 내 자녀들이 진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주님의 기도에 다시 결합합니다. sanctifica eos in veritate45,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 봉사의 진실함과 진리가 세상의 모든 길에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청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아는 기쁨을 지닙니다. redemi te et vocavi te nomine tuo: meus es tu46. 내가 너를 구원하였고 너를 이름으로 불렀다. 너는 나의 것이다. 그분께서는 봉사를 자랑으로 여기는 이 큰 오푸스데이 가족으로 우리를 데려오셨습니다. 모든 영혼을 섬기며, 무엇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로마 교회를 섬기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교황을 섬기는 가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하고 교회 교도권에 온순히 따르며, 하느님 나라를 넓히기 위하여 기도하고 일하십시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딸들과 아들 여러분, 아직 밭고랑에 감추어진 씨앗과도 같은 오푸스데이에 주님과 교회와 온 인류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는지 깨달으십시오. 여러분 성소의 모든 위대함을 깨닫고 날마다 더 사랑하십시오. 낙관과 기쁨과 초자연적 정신으로,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도구가 되기로 결심하십시오.

내 자녀 여러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과 교회가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여러분의 삶인 이 봉사에서 주님의 은총은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수호자로 부르는 거룩한 대천사들과 거룩한 사도들의 전구와 수호천사들의 꾸준한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봉사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자기희생적이고 순종하는 봉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우리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일치하여, 언제나 새롭게 살아 있는 너그러운 fiat가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주님 탄생 예고 때부터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당신 모범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이 하느님의 싸움에서 자신이 약하다고 느껴지면, infirmus dicat: quia fortis ego sum47, 약함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내 주님의 은총으로 나는 강합니다.” 나도 성 바오로와 함께 덧붙입니다. gratia vobis et pax!48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또한 이 말씀도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모두를 두고 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업과 수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희망을 기억합니다49.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축복합니다.

마드리드, 1943년 5월 31일505152

목차
1

토빗 14,10.

2

에즈 5,11.

성경 인용
목차
3

마태 20,28.

4

필리 2,5-7.

성경 인용
목차
5

사도 20,28.

6

1코린 4,1.

성경 인용
목차
7

1코린 4,20.

8

2코린 11,28.

성경 인용
목차
9

1코린 12,4-11.

성경 인용
목차
10

에페 4,11-13.

성경 인용
목차
11

1코린 7,7.

성경 인용
목차
12

시편 100[99],2.

성경 인용
목차
13

요한 15,14.

성경 인용
목차
14

요한 7,13.

15

1베드 3,14.

성경 인용
목차
16

요한 1,24.

17

요한 1,19.

18

마태 3,7.

19

같은 곳.

성경 인용
목차
20

성직주의와 취미 삼아 하는 태도의 관계, 그리고 일부 사제나 수도자들의 학문 활동이나 직업 활동과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용어집을 참조하십시오(편집자 주).

목차
21

루카 12,42-46.

22

사도 10,34.

성경 인용
목차
23

루카 19,46.

성경 인용
목차
24

1코린 9,14.

25

1코린 9,12.

성경 인용
목차
26

3요한 9-10.

성경 인용
목차
27

요한 8,32.

28

요한 15,2.

29

“고을 원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용어집을 참조하십시오(편집자 주).

성경 인용
목차
30

1코린 12,11 참조.

성경 인용
목차
31

요한 17,21-23.

성경 인용
목차
32

요한 3,16.

성경 인용
목차
33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De Consideratione libri quinque ad Eugenium tertium, IV, c. II (SBO III, 451-452쪽).

34

콜로 3,24.

성경 인용
목차
35

마르 15,43.

성경 인용
목차
36

1코린 7,29.

성경 인용
목차
37

로마 8,28.

성경 인용
목차
38

사도 20,28.

성경 인용
목차
39

필리 1,8.

성경 인용
목차
40

창세 4,2.

41

1요한 3,10-12.

42

창세 37장 참조.

성경 인용
목차
43

1코린 15,27-28; 에페 1,10 참조.

44

3요한 4 참조.

45

요한 17,17.

성경 인용
목차
46

이사 43,1.

성경 인용
목차
47

요엘 3,10.

48

1테살 1,2.

49

1테살 1,2-3.

50

편지 제27호, 제56항.

51

Apuntes íntimos, 1723번.

52

호세 루이스 이야네스, “Obra escrita y predicación de san Josemaría Escrivá de Balaguer”, SetD 3 (2009), 218쪽 참조; 같은 저자, “Cartas (obra inédita)”, Diccionario de San Josemaría Escrivá de Balaguer 수록, Editorial Monte Carmelo, 부르고스, 2013, 204-211쪽; 루이스 카노, “Instrucciones (obra inédita)”, 같은 책, 650-655쪽.

성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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