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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마도 또 다른 장애물, 즉 내면의 어둠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불쌍한 마음이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으며, 그 어둠은 몇 순간, 며칠, 한 계절, 몇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부르짖을 때입니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으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십니다.” (시편 86, 3. 5).
그리고 이제 성 요한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그 엄청난 사건을 묵상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요한9, 1-3).
실명이 온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거룩하고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시려는 수단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 즉 우리의 믿음을 더 신학적으로 만들고 하느님 이외의 다른 이유에 덜 의존하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지식이 적은 사람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보이는 것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을 더 확신하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이성으로 보는 것, 즉 착각할 수 있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속을 수 없는 것을 훨씬 더 확신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요한 9, 6-7).
자신을 정결하게 하면 다시 밝고 빛나는 신성한 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artas-1/16/ (20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