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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죄를 보속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분과 함께 구원 사업에 협력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시편 39편의 말씀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는지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희생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죽을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 첫머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하느님,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습니다.’”110
우리는 우리의 삶과, 아무런 유보도 흥정도 없는 헌신을 속죄로 바치고자 합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위하여, 우리의 형제들인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하여, 모든 시대에 저질러진 죄와 세상 끝날까지 저질러질 죄를 위하여 바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응답할 줄 모르고 주님께 받은 특별한 사랑을 배반하는 가톨릭 신자들,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의 죄를 위하여 바치고자 합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모든 영혼을 그리스도께 얻어 드리기, 예수 성심께 가해진 모욕을 넉넉히 보속하기, 이것이 우리의 포부입니다. 이토록 신적인 광기와 우리 속을 집어삼키는 열정, zelus domus tuae comedit me111를 지니고 있는데, 어떤 인간적인 야망이 우리의 삶의 길에 달라붙을 수 있겠습니까? 오푸스데이의 이 정신을 지킨다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사회적 지위를 높이거나 직책과 명예와 인정을 얻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의 뜻과는 달리,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만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애를 만족시키려고 이런 인간적인 야망에 이끌린다면, 우리가 그렇게 했다고 거짓으로 말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려는 바람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Nemo potest duobus dominis servire”112, 곧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허영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갓 서품을 받았을 때 이런 좋은 충고를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출세하고 싶다면 진지하게 일하는 것은 무엇이든 조심해서 피하고, 무엇보다 분명한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이미 그 말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저의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잘못과 개인적인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출세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히브 10,5–7. 시편 40[39],7–9 참조.
요한 2,17.
마태 6,24.
† 성경 참조: 마태 6,24; 요한 2,17; 시편 40,7–9; 히브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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